독서록

2015년에 쓴 혼불감상

김데레사 2018. 10. 28. 22:04

최명희 혼불1. 매안출판. 2012.(2판9쇄)

2015. 5. 3. 혼불1권을 완독했다. 앞으로 아홉 권을 더 읽어야 한다. 기대되고 설렌다. 1권을 읽으며 가슴 사무치게 슬프고 눈물이 주루룩 난 때는 시집을 오기 전부터 남편을 잃어버린 청상과부의 삶을 접했을 때다. 성장기의 필자는 엄마와 큰오빠의 죽음 앞에서 성장이 멈춰버린 채 수십 년을 살아온 것만 같은데 이 작품을 읽으면서 필자의 슬픔은 그리 큰 것이 아니었음에 더욱 슬픔이 깊어진다. 이 작품의 청암부인은남편이라는 명목을 갖고 있었지만 남편은 시집 오기도 전에 죽었으니 그 한이야말로 컸으리라. 청암부인이 오천석 재산가가 되었다는데 그 이면에는 운명에 대한 대찬 저항이 있었을 것만 같다. 앞으로 혼불 2권부터는 어떤 이야기가 펼쳐질지 기대된다. 혼불은 박경리의 토지와는 사뭇 다르다. 토지를 읽을 때는 인물들이 각자 자기 목소리를 내느라 정신없었다는 느낌이 드는데 혼불은 서술자가 인물들을 변호하느라 바쁘다는 생각이 든다. 혼불의 인물들은 비교적 조용하다. 토지의 인물들이 통통튀는 빗방울 같은 느낌이라면 혼불의 인물들은 주변의 상황에 그저 출렁거릴 뿐인 바다의 파도같다는 느낌이 든다. 신기한 일이다. 아래는 와닿은 구절을 메모해 보았다. 

50쪽  손등만이 아니라 토방 주변에는 여기저기서 생선 비늘처럼 햇빛이 조각난 채 빛나고 있다.

72쪽  사람의 정이란 나무 키우는 것 한가지라.....아무리 좋은 나무라도 울안에 갖다가 심어 놓고 천대허면 못 크는 법이 아니냐...정도 그와 꼭 같으다.

73쪽 이름이 같다고 몫이 다 똑같은 것은 아니지.

112쪽 논바닥에 엎드린 햇빛에서 놋쇠 익는 냄새가 난다.

125쪽 이기채 쪽이 날카로운 기상을 견고하게 품고 있다면, 강모의 선명하고 가느다란 입술은 고와 보이면서도 내성적인 고집을 단단히 물고 있다고나 할까.

142쪽 배우기도 하고 책도 읽지. 또 나 혼자서 골똘히 생각하던 일들이기도 하고. 무릇 사상은 제 속에 그런 소양이 있을 때 급진적으로 받아들여지는 것이니까.

147쪽 사람은 자기 몫을 스스로 알아야 한다. 한 섬지기 농사를 짓는 사람은 근면하게 일하고 절약하여 자기 가솔을 굶기지 않으면 된다. 그러나 열 섬지기 짓는 사람은 이웃에 배 곯는 자 있으면 거두어 먹여야 하느니라. 백 섬지기 짓는 사람은 고을을 염려하고 그보다 다른 또 어떤 몫이 있겠지.

156쪽 그때 강모는 반짝이는 물비늘보다도 더욱 충만하게 빛나는 그네의 눈빛을 보았었다.

221쪽 그 어른은 어려서부터 남달리 영특하여 일찍이 소학을 배우고 시문을 지으니, 영묘한 문장이 아름다웠으며 행실 또한 요조숙녀였다. 거기다가 가을 바람에 씻기운 달이라고나 할까, 고고한 천품이면서도 그 용색의 그윽함을 따를 자가 없었다.

244쪽 그때 율촌댁이 달빛을 마시는 효원에게 느낀 것은, 무서운 집념과 오기와 범접할 수 없는 기상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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