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시인 동주 (안소영, 창비, 2015)
48쪽: 이상은 세상을 떠났지만, 이 경성 어딘가에는 동주 같은 문학 청년들의 가슴을 뛰게 하는 또 다른 문인들이 살아가고 있으리라.
76쪽: 100 한정판으로 출간되어 구하지 못한 백석 시집 <사슴>은 도서관에서 빌려 전부 손으로 베껴 놓았다.
95쪽(처중의 말): 공부? 그래, 책장이나 뒤적뒤적하는 게 공부인 줄 아나? 전차 칸에서 내다보는 광경, 정거장에서 사람들과 부딪치며 느끼는 감정, 기차 속에서 보고 듣는 모든 이야기가 바로 생활이요 진정한 공부라네.
98쪽 '치안 유린죄' 교수들은 몇 달 뒤 풀려났으나 다시 학생들을 가르칠 수는 없었다. 연희 전문은 궁리 끝에 최현배 교수를 도서관 직원으로 고용하여 계속 연구할 수 있게 했다. 도서관에서 학생들 틈에 섞여 최현배 교수가 몰두한 것은 훈민정음, 곧 우리글에 대한 연구였다. 밤늦도록 불편한 열람실 자리를 지키고 있는 스승을 보며 학생들은 울분과 존경심이 함께 들었다.
99쪽 일본이 길을 내는 방힉은 산과 강의 흐름을 존중하던 조선 사람들과는 달랐다. 산이고 강이고 사람이고 거치적거리는 것은 다 걷어 버리고 치워 버렸다. 개천은 메우고 길가 살림집들은 밀어 버렸다. 작은 산은 무너뜨리고 큰 산은 허리를 뚫어 터널을 만들었다.
107쪽(송몽규의 말):신진 작가들은 사람 내부에서 소용돌이치는 감정을 분석하는 데만 힘을 기울이고, 정작 그 인물을 고통스럽게 하는 사회 현실은 외면하고 있네......어렵고 고통받는 사람들을 바라보며 그 가운데 문학의 역할을 고민했던 것만큼은 인정해 주어야 할 것이야.
109쪽(이순복의 말): 무녀도는 인물의 내면을 집요하게 파고들어 가는 것도 읽는 맛이 새롭고...하지만 그뿐이네..작품에 나오는 산천은 내 고향 마을을 그린 듯 실감나는데, 그 속에 괴로워하는 인물들은 내가 만난 사람들 같지 않아. 도대체 무슨 이유로 그렇게까지 갈등하고 괴로워하는지...
111쪽(동주의 말): 순수를 염두에 두고 쓰면 순수의 작품이 나오고 현실을 그리겠다고 마음먹으면 순수하지 않은 작품이 되고 마는 걸까?....어떤 것을 쓰건 혼신을 힘을 다해 진실하게 그리며, 그리고 그 진심이 읽는 이에게 전해지면 순정하다, 순수하다 할 수 있지 않을까? 사람의 내면에 치중하건, 그를 둘러싼 아픈 현실을 그려 내건.... 순수는 작가가 먼저 정해 놓은 작품의 성격이 아니라, 읽는 이의 가슴에서 비로소 느껴지는 것 아닐까?
126쪽 문학이란 무엇인가, 문학은 어디에서 비롯되었는가, 문학과 삶은 어떠한 관계에 있는가, 문단의 대가는 물론 갓 문학에 눈을 뜬 사춘기 소년도 제 나름대로 고심하는 문제였다.
127쪽 동주는 결심했다. 잘못된 전쟁을 지지하고 동포들의 고달픈 삶을 외면하는 것이 문학의 길이라면 가지 않으리라. 감투와 명성을 탐하고 궤변으로 자신의 행동을 미화하는 자들이 문인이라면 되지 않으리라. 하나의 시어를 찾기 위해 수없이 버리고 취하는 연마의 과정이 저렇게 쓰이는 것이라면, 더 이상 쓰지 않으리라.
여기까지 읽으면서 눈물이 새어나오는 부분을 만났습니다.... 도서관 사서라서 더욱 공감이 된 것인지도 모르겠어요. 배경이 도서관이라서요... "최현배" 선생님이 연구실에 쫓겨나서 도서관 직원이 되어 도서관에서 연구하시는 부분입니다. 나라를 잃고 모국어를 연구하시려는 그 열정도 감동이지만 연희 전문에서 배려해 주신 것도 감동입니다. 아울러 이렇게 된 일제 강점기 현실의 비참함도 깊은 슬픔으로 저절로 눈물이 납니다. 같은 인간으로서 지켜야 할 최소한의 윤리를 버리고 강제로 점령한 일본인의 비도덕적인 만행에 후손으로서 마음이 아픕니다. 그 와중에도 도서관 한쪽에서 연구하시는 최현배 국어학자 교수님의 삶은 감동을 주고도 남습니다. 장애물을 잘 딛고 이겨낸 분들이 계셔서 오늘 우리가 이렇게 자유를 누릴 수 있게 된 것 같습니다. 이 책은 시인 동주의 일생이지만 거기에 드러난 숨은 역사가 보입니다. 그리고 당시 살지 않았지만 생생하게 그리고 있어서 당시에 살고 있다는 느낌을 받습니다. 나머지 부분도 천천히 마저 읽어야겠습니다.
제목 : 시인/동주 (안소영, 창비, 2015) 2016. 2. 10. 오후.
139쪽 맹자께서 말씀하셨다. 사람을 사랑하였는데도 친해지지 않거든 그 인을 돌이켜 보고, 사람을 다스렸는데도 다스려지지 않거든 그 지혜를 돌이켜 보고, 사람에게 예를 표했는데도 답하지 않거든 그 공경을 돌이켜 보아라. 행하고도 얻지 못하는 게 있거든 모두 자기를 돌이켜 보며 찾아야 하리니, 그 몸이 바르면 천하는 그에 돌아올 것이다. 시경에 일기를 길이길이 천명을 지켜 스스로 많은 복을 구하리라 하였느니라 (시인 동주가 손때 묻은 양장본 <예술론> 케이스에 붙여둔 글귀)
162쪽 자신의 마음 깊숙한 곳을 들여다보고, 주변의 자연과 사물들도 그곳까지 데려가, 일렁이는 감성들을 충분히 무르익게 하고, 때로는 예리한 지성의 바늘로 톡 건드리기도 하면서, 마침내 정제되고 아름다운 우리말의 체에 걸러 노트 위에 한 편의 시로 옮겨 적는 길고도 진실하고 순정한 시간, 그것이면 충분했다. 동주의 새로운 시는 절망의 어두운 그늘 속까지, 슬픔의 웅덩이 깊은 곳까지 닿아본 사람만이 쓸 수 있는 시였다. 어떠한 어려움 속에서도 맑고 고요한 눈을 잃지 않은 사람만이 부를 수 있는 노래이기도 했다.
172쪽 동주의 시는 맑고도 담담했다(1941.5.31.십자가) 마땅한 시구를 찾느라 언어를 유리알처럼 굴리며 애쓰지 않아도, 캄캄한 동굴에 홀로 있는 것처럼 갑갑해 고함지르지 않아도 되었다. 땅 속 깊고도 거친 수맥을 헤쳐 오면서도 지표면에서 고요히 솟아나는 샘물처럼 사람의 마으을 투명하게 건드리는 시였다.
173쪽 인간의 얼굴을 한 신은, 식민지가 되어 버린 조선 땅 어디에든 모습을 드러내었고 동주는 그분을 알아보았다.
205쪽 졸업문집.. 시집 전체가 장중하고도 아름다운 교향악 같았다. 각 악장의 흐름을 자연스럽게 이어 가면서도 중간중간 적절한 변주가 있어 한 편 한 편이 새롭고 또 전체적으로는 조화로웠다
별 헤는 밤을 노래하면서도 첫새벽의 맑은 아름다움을 담은 빼어난 시였다.
방금 <시인/동주>를 모두 읽었다.(2/10. 밤12:02)
생체실험으로 죽음을 맞이한 동주와 몽규의 일생이 안타깝고 슬프다.
후쿠오카 감옥에 들어가 얼마나 고생했을까?
시를 일본어로 바꾸면서 얼마나 마음이 아팠을까?
뛰어난 역사의식과 구국 정신을 가진 몽규도
뛰어난 시적 감수성과 철학을 지닌 동주도
하늘의 천사들도 안타까웠는지....
이렇게 70주년을 맞이하여 다시 살려내시는 구나...
두 사람은 죽었지만 죽지 않고 지금까지 앞으로도 영원히 살아있겠지..
안소영 작가는 담담하게 정제된 글을 잘 쓴다는 생각이다.
시인/동주를 쓸 자격이 충분한 작가이다.
이미 시공간이 바뀌었는데도 2016년 시공간에 살려내는 힘은 대단하다.
영화로도 곧 나온다고 하니 시인의 시혼은 정말 영원한 것 같다.
정지용 시인도 감탄했다는 동주의 시는
삶이 그대로 담겨 있어서 더욱 생명력이 큰 것 같다.
가슴에서 우러나는 것을 정말 투명하게 쓰는 것이 시가 아닌가 생각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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