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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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데레사 2014. 6. 24. 21:38

그녀는 이제 요양원 침대에 누워 있다// 그녀의 머리맡에 두고 왔다/ 아무도 읽지 않는/ 시를 베낀 노트 한 권을// 달에서 어머니 빈 젖을 빠는/ 소리가 들린다 버스 창가/ 지나가는 달을 올려다보는 이여"('달 속에 두고 온 노트')어머니 '빈 젖'을 빨던 8남매 중 막내아들이 있다. 그 아들, 지금 우리네 세는 나이로 마흔여덟인 박형준 시인이다. 남쪽 정읍 들녘에서 노동으로 한 세월 보내신 그 노모님은 서울에 홀로 사는 막내아들 집에 다녀갈 때마다 "가슴을 찢어라 그래야 네 삶이 보인다,고/ 올라올 때마다 일제시대 언문체로 편지를 써놓고 가는/ 가난한 여인"('바닥에 어머니가 주무신다')이었다. 그 어머니가 지난해 세상을 떠났다."당신의 주름살에 눈물의 힘이/ 심해의 파도를 일으키고/ 감정이 딱딱하게 굳는 그 순간까지/ 제자리에서 천천히 지느러미를 젓는 물고기// 흐르는 눈물 때문에/ 당신이 정말 거기 계신지도 모르는/ 단 한번 당신의 모습/ 제대로 본 적 없는/ 이제 나는 반쯤 눈이 먼 장님물고기"('장님 물고기' 부분)흐르는 슬픔에 세상이 반쯤 잠겨버린 장님 아들. 그는 어머니 관이 땅 속으로 내려갈 때 너무 울어 허리가 끊어지는 슬픔이 무언지 몸으로 알았다고 했다. 땅 속으로 내려간 어머니는 돌아보니 '불탄 집'이었다. 시인 아들은 "어머니는 평생 심화(心火)를 가슴에 안고 사셨다. 이제 그 집은 불타 사라졌지만 그 심화는 쉽사리 사라지지 않는다. 마음속의 불, 어머니의 가슴에 타는 그 불을 누가 꺼뜨릴 수 있었겠나. 내가 시를 쓰는 것은 그런 어머니의 가슴에 팔찌를 놓아드리는 일이었다"고 기술했다.





여섯 번째 시집을 펴낸 박형준 시인. 그는 "초기에는 시를 쓰면서 세상을 미워하고 세상도 나를 미워하는 것 같아 절망하는 부분도 있었지만 이제 시를 통해 다양한 사람과 풍경들을 만나면서 깊어지고 밝아지는 느낌"이라고 말했다.
남정탁 기자

'불탄 집'(천년의시작)은 그가 최근 펴낸 여섯 번째 시집 제목이다. 작별한 노모에 대한 그리움과 헌사를 주조음으로 새로운 비상에 대한 의지가 녹아 있다. 등단 23년차(1991년 한국일보 신춘문예) 시인으로 소월시문학상, 현대시작품상 같은 굵직한 상으로 일찍이 격려를 받았지만 쉰이 가까운 나이에 여전히 보따리 시간강사 생활을 이어가고 있는 그가 비 내리는 광화문에 나왔다. 동국대 오후 강의를 마치고 명지전문대 야간 강의를 앞둔 틈에 잠시 달려 나온 거였다. 그는 이번에 첫 평론집 '침묵의 음'도 함께 펴냈다."부모도 돌아가시고 나면 마음속에서 불탄 흔적이겠지만 너무 침잠하지 않되 그 흔적들 속에서 되살아나는 비상의 이미지를 생각했습니다. 그 흔적들을 끌어모아 날개를 만들어 날아다녔으면 싶었어요. 너무 저 자신이나 가족에게만 몰두하지 않으려고 노력했습니다."박형준의 이러한 의지는 "벼랑에 뿌리내린 소나무/ 바람에 흔들리며 날개를 퍼득인다// 바위를 뚫고 허공에 삐져나온 흰 뿌리들/ 불타는 뿌리에게서 새의 외침을 듣는다"('번개에 불이 이는 나무 뿌리들')거나 "별/ 눈먼 자의 꿈// 별/ 눈먼 자의 슬픈 노숙// 너무나 멀리 물러나 있는/ 신들의 눈물단지// 비 오는 날/ 꽃들은 눈물단지"('눈물단지') 같은, 슬픔이 맑게 걸러진 시편들에 보인다. 그렇기는 하나 이제 어머니를 여읜 지 갓 1년 넘긴 늙은 총각 막내아들의 슬픔과 회한은 시인의 의지를 앞서는 듯하다."내가 모래에 몸을 적실 때,/ 모래는 내 몸속으로 들어와/ 내 살갗에 뜨거운 창을 만들고/ 비늘이 된다.// 비늘 하나하나에 비치는 우주들,/ 거기서 다시 내가 태어난다./ 구불구불거리며 하늘로 뻗어 가는/ 초록의 눈물에 비치는 어머니여"('뱀')박형준은 "시는 슬픔을 견디는 데 큰 위로와 의지가 된다"면서 "어머니라는 존재가 삶의 보이지 않는 힘이듯 시라는 것은 순간순간 힘을 주고 세상을 사랑하게 만드는 큰 동반자"라고 말했다. 어머니의 생전 당부처럼 "우울과 슬픔의 막을 한 꺼풀 찢고 나오고 싶다"고 말하는 시인의 얼굴은 평화롭고 맑아 보였다. 서러울 것 없다, 이렇게 다짐했으니."자기 이름을 잊어버린 어머니의 이름은 내 가슴속에 있고/ 내가 잊어버린 젖먹이 적 내 이름은 어머니 가슴속에 있다"('불에 타는 은행나무')조용호 문학전문기자 jhoy@segye.comⓒ 세상을 보는 눈, 세계일보 & 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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