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시

시인님 기사 스크랩(경향신문)

김데레사 2013. 11. 24. 17:34

마흔 넘은 사람의 얼굴은 그 사람의 이력서다. 미추(美醜)를 떠나 얼마나 절제하며 살았는지 탐욕스럽게 지냈는지, 마음과 행동이 얼굴에 고스란히 나타난다. 지난 50년간 시를 쓰며 살아온 김남조 시인의 얼굴은 그 자체가 시(詩)다. 삶과 주위에 대한 호기심과 애정을 담은 눈빛이 시처럼 빛난다. 모 시인이 말했듯 "정신적 모험을 감행하면서 금욕으로 자신을 다스려온 사람만이 갖는 품위"가 후광을 만든다.

시란 가장 명징하고 절제된 언어를 퍼올리는 것. 우리 마음의 순정을 다이아몬드를 연마하듯 깎아내 삶을 빛나게 하는 것이다. 만약 우리가 시를 즐겨 읽고 왼다면 욕을 하거나 상스러운 언어를 쓰는 이도 줄어들고 평화롭지 않을까.<img src="http://www.khan.co.kr/nm/ContentsObject/8/8572_2_d5_2.jpg" style="display:inline" align="right" hspace="5" vspace="5">올해 77세. 희수(喜壽)를 맞은 김남조시인을 만나기로 한 것은 대한민국에서 가장 유명한 여류시인이어서가 아니다. 그가 50년, 아니 평생을 시로 노래해온 사랑과 기도, 참회, 화해와 용서 등이 이 시대에 제일 필요한 단어들이라고 생각해서다. 모든 곳에서 서로 편갈라 다투고 저주를 퍼붓는 요즘, 시인으로부터 진정한 사랑와 용서의 의미를 듣고 우리들을 위한 기도를 부탁드리고 싶었다.

그런데 그를 만나기가 쉽지 않았다. 무료한 노년의 삶이 아니라 20~30대보다 더 분주한 시간을 보내기 때문이다. 40여년간 봉직했던 숙명여대에서는 정년퇴직을 했지만 명지대 등에서 특강도 하고, 그동안 써온 1천여편의 시 가운데 [김남조 시전집]에 실을 것을 고르는 작업은 물론 신작 시까지 다듬고 있다. 또 그동안 신문-잡지에 실린 대담과 사진들을 정리해 앨범으로 만들기도 했다. 10여년 전만 해도 여성지의 단골메뉴는 "명사대담"이어서 김시인은 이어령, 피천득, 성공회 김성수 주교, 고 정주영 회장 등 각분야의 명사들과 대담을 했다.

"그때는 바쁜 분들이라 약속시간 정하기도 힘들고 사진찍는데 시간을 많이 빼앗긴다고 생각했는데 이제와 보니 참 좋은 이야기를 많이 나눴네요. 정주영씨는 젊은시절 모윤숙 시인 팬이었다며 "렌의 애가"를 암송해서 놀라기도 했습니다"17일엔 작곡가 이영자교수가 김남조시인의 시에 작곡한 노래들을 소개하는 "세월의 거울 앞에서"란 음악회(금호아트홀)도 열린다. 동료문인들이 마련해준 첫 시집 [목숨](1953년 발간) 외엔 단 한번도 출판기념회를 한 적이 없고 숱한 상을 받아도 자신을 위한 축하연을 해본 적이 없는데 이영자 교수의 간곡한 부탁에 모처럼 기념되는 자리를 마련했단다.

언제나 똑같은 헤어스타일(평생 미장원을 가본 적이 없고 동네 미용사가 와서 퍼머 해준다고 한다), 주름살조차 허용하지 않는 피부 등이 놀라워 "어쩜 그렇게 변함없으세요"란 상투적이긴 하나 진심어린 질문을 했다. 김시인은 입술의 한쪽 끝부분이 살짝 올라간 매력적인 미소를 지으며 이렇게 말했다.

"사람들이 그런 말을 하면 "제가 젊었을 때도 이렇게 생겼었나요?"라고 되묻는답니다."그러면서도 "아직 염색도 하지 않고 어지간한 책은 돋보기도 쓰지 않는다"고 덧붙였다. 즐겨 쓰는 화장품 브랜드도 알려주었지만 그 고운 피부가 어디 화장품 덕이랴. 피부 역시 내 마음의 상태를 보여주는 것일진대.<b>참회와 고백</b><b>-사랑한 일만 빼고 나머지 모든 일이 내 잘못이라고 진작에 고백했으니 이대로 판결해다오 그 사랑 나를 떠났으니 사랑에게도 분명 잘못했음이라고 준결히 판결해다오.. (시 "참회" 중에서) </b>문학평론가 이길연씨는 "김남조 시인의 사랑에 관한 시학은 참회와 고백에서 시작된다"며 "참회와 고백은 자신을 비우고 풀어내는 일로 시인은 이를 통해서만 순수무구한 심정을 유지할 수 있고 세계는 물론 타자와의 화해와 용서에 도달할 수 있다"고 평했다.

미모, 재능, 명성, 부에다가 든든한 남편과 세 자녀 등 모든 것을 다 갖추고 평생 교단과 시단에서 최선을 다했으면서도 그는 항상 부끄러워하고 참회하고 스스로에게 날카로운 칼을 들이댔다. 남편인 김세중 교수(서울대 조각가)가 타계했을 때도 그의 죽음을 슬퍼하거나 그리워 죽겠다고 울부짖기 전에 "안식을 주는 가정, 음식을 데워 기다리는 아내가 되지 못했음"을 자책하며 이런 시를 썼다.

<b>-한 남자를 행복하게 못했으며 여타 이에 준하는구나 이제부턴 후회와 둘이 살면서 스스로 판결한 벌을 섬길지니 즉 두 번 다시 이 세상에 손내밀지 말라-</b> (시 "나에게"중에서)<img src="http://www.khan.co.kr/nm/ContentsObject/8/8572_1_d5_1.jpg" style="display:inline" align="left" hspace="5" vspace="5">꽃밭에서만 살아온 것 같은 그도 "대단히 아프고 긴 터널을 지내왔으며 고공비행 같은 아슬아슬하고 외로운 삶을 살았다"고 토로한다. 생에 놓인 지뢰들이 무시로 폭발하는 상황에도 시를 써왔단다.

어릴 땐 폐결핵을 앓아 항상 죽음을 의식하고 살았으며 4남매 중 혼자만 남은 그를 애지중지하던 어머니의 사랑도 눈물겹다. 김시인 어머니는 한 젊은 신부에게 당부하며 그 신부가 죽는 날까지 날마나 기도중에 당신의 딸을 위해 몇가지 축원을 보태줄 것을 약속받았다. 수중의 돈 전부를 미사예물로 바치고 딸을 위한 기도구절도 만들었다. 그것이 유언이었다. 그 젊은 사제도 이젠 환갑이 넘었다. 남들이 보기엔 햇살이 가득했지만 그늘도 컸단다.

참회란 무딘 감각으로는 불가능한 일이다. 퍼렇게 날이 선 칼 같은 감성으로 자신을 두드려야 나오는 울음같은 것. 김시인은 "아직도 퍼내도 퍼내도 샘솟는 감성을 행운이라고 생각한다"고 한다. 물론 피부에 감전되듯 짜릿한 감성이 아니라 속까지 축여지는 감성이다. 요즘도 이틀 정도 아무 일도 않고 음악을 들으며 참담하게 남루하고 초라해지고 가루가 되는 듯한 느낌이 들면 시가 써진다고 한다. 자신의 무력함을 참회하고 고백하고서야 진실한 시어가 만들어진단다. 그의 바람도 위대한 시를 쓰는 것, 수십만명이 읽는 베스트셀러를 만드는 것이 아니라 절실한 시를 쓰고 50년 후에 10명이라도 애송하는 시를 쓰는 것이다. 예술가의 본질은 순수와 정직성이라고 믿는 그는 올해 나온 새시집 [영혼과 가슴]도 그런 절실한 마음에서 나온 시들로 채웠다.

"시란 무균상태처럼 곱기만 해서는 안 됩니다. 하지만 세상의 분노와 증오를 담고, 조야한 언어로 해부하듯 써서도 안 되죠. 무엇보다 인간에게 주어진 생명이 선물이고 축복이란 경건한 감사의 마음을 근거로 써야 합니다."<b>세월 </b>언젠가 김시인은 한 인터뷰에서 만약 하느님이 10년의 세월을 더 선물해준다면 40대를 한 번 더 살아보고 싶다고 했다. 그 기사를 읽은 무렵은 30대인데도 아무런 열정 없이 지리멸렬한 삶을 살 때여서 노시인이 보장하는 "삶을 관조하는 불혹의 40대"가 은근히 기다려지며 위안을 받았다. 그런데 시인은 40대의 기자에게 "기대"란 비타민을 선물했다.

"나의 20대는 6-25 전쟁 등을 겪어서인지 너무 힘겹고 괴로웠습니다. 젊음 자체가 갈등이고 아픔이기도 하지만요. 30대는 너무 바쁘기만 했어요. 40대가 되니 내포가 깊어지고 중앙으로 걸어 들어가는 듯한 내면의 풍요가 느껴지더군요. 그리움에 설레는 것도 모성적이고 경건하게 되지요. 아름다움이나 시의 두께가 두터워진답니다. 그런데 살아보니 50대도 좋고, 60대도 괜찮고 70대도 살아볼 만하네요.물론 이 나이에도 여전히 고통과 아픔을 느끼지만 젊을 때처럼 칼로 베는 절상이 아니라 칼등으로 온화하게 두드리는 듯한 느낌이거든요. 세월이 흘러 방금 둔 물건이 어디있는지 모르는 건망증은 심해지는데 시를 쓸 때 필요한 어휘들은 잊지 않으니 그것만으로도 감사할 일이지요."인생은 시간을 사는 것. 시간이 와서 다녀가는 것인지 혹은 시간 곁을 내가 지나가는 것인지 모르지만 매순간 시간의 소중함을 소중하게 깨닫고 보배로운 선물로 여기는 것이 중요하다고 시인은 강조한다. 오고가는 세월을 받아들여 따뜻하게 덥혀보면 순간순간의 눈동자, 매시간의 촉매가 하나하나 섬세하게 절실하게 우리의 삶을 채워간단다.

살수록 살아볼 만하다는 삶의 긍정, 그렇게 낙관적으로 세월을 관찰하고 받아들이기에 그는 단 한순간도 무료하거나 심심하지가 않다고 했다.

<b>기도 </b><img src="http://www.khan.co.kr/nm/ContentsObject/8/8572_3_d5_3.jpg" style="display:inline" align="right" hspace="5" vspace="5">기도와 편지는 닮았어라 그대 앞 친전도 신은 읽으시고 기도 구절 은밀해도 그대 응감엔 들키는 걸기도와 편지는 무명 옷에 무명수건 쓰고 머리 수굿이 해그늘 밟아가는 그런 사람같아 마지막 몇개비 성냥을 아껴 모닥불 삼가고 참는 그런 심사 같아 (시 "기도와 편지" 중에서)김남조 시인이 가톨릭 신자인 것은 널리 알려진 일이다. 10대에 폐결핵을 앓으며 성령을 체험한 후 예수 그리스도가 부모나 자식보다 더 큰 존재라고 생각한단다. 그는 허영자, 신달자, 강은교 씨 등 시인들의 대모이기도 하고 박근혜 한나라당 대표의 대모이기도 하다. 성심여고 시절, 부탁을 해와 대모가 되어 주었단다. 박대표의 어머니 육영수 여사와는 김시인이 40대일 때 방송 프로그램을 진행하며 만나 인연을 맺기도 했다. 대모가 되는 것은 10년 전에 폐업했는데 대모와 대녀의 나이 차이가 점점 커져서란다. 그는 자신은 물론 그와 인연을 맺은 이들을 위해 기도한다.

"정말 좋은 기도는 어떻게 해달라고 주문하는 기도가 아닙니다. 예수님의 생애를 필름 되감듯 되새기는 것이 좋은 기도지요. 십자가에 못박혀서도 원망하지 않고 용서하고 축복해주신 예수님처럼 아무리 비통해도 염세에 빠지지 않는 것이 기도입니다. 용서하고 삶을 긍정하는 것이 기도의 덕목입니다."김남조 시인은 최근 네바다 사막에 다녀와 "사막"이란 시를 썼고 연작시를 준비중이다. 사막을 건너는 심각하고 절대 고독한 남자를 보는 순간, 그의 소름끼치는 고독에 전율했단다. 하지만 "모랫바람에 스륵스륵 칼날 벼르며 스스로 전율하는 그 고독에서도 그는 수만년 전 살결 그대로 있는 사막과 그 남성성을 보며 새로운 시어를 만들어냈다. 막막한 사막은 황량하기에 작은 비에도 적셔지는 위안이 더 큰 법. 5분만 하늘을 봐도, 한 소절의 음악만 들어도 치유의 기능을 한다. 마음 안에 사막을 만들고 스스로를 모래바람 속에 휘몰아가는 이들에게 시인은 오아시스나 비를 기도해준다.

시인은 절망에서 희망을 보는 일, 절창 끝에서도 새로운 희망의 노래를 기억하는 사람이다. 77세에도 "절절한 감수성"과 "영원한 여성성"을 지닌 김남조 시인은 "그건 나만의 비법이 아니라 모두 기도하고 삶을 긍정하면 가능한 선물"이라고 희망의 메시지를 던진다.

글 유인경 편집장 alice@kyunghyang.com사진 김석구 기자 sgkim@kyunghya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