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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을엔 유서를 쓰리라
낙엽이 되어버린 내 시작 노트 위에
마지막 눈 감은 새의
흰 눈꺼풀 위에
혼이 빠져나간 곤충의 껍질 위에
한 장의 유서를 쓰리라
차가운 물고기의 내장과
갑자기 쌀쌀해진 애인의 목소리 위에
하루 밤새 하얗게 들어서 버린
양치식물 위에
나 유서를 쓰리라
파종된 채 아직 땅 속에 묻혀 있는
몇 개의 둥근 씨앗들과
모래 속으로 가라앉은 바닷가의
고독한 시체 위에
앞일을 걱정하며
한숨짓는 이마 위에
가을엔 한 장의 유서를 쓰리라
가장 먼 곳에서
상처처럼 떨어지는 별똥별과
내 허약한 폐에 못을 박듯이 내리는 가을비와
가난한 자가 먹다 남긴 빵 껍질 위에
지켜지지 못한 채 낯선 정류장에 머물러 있는
살아있는 자들과의 약속 위에
한 장의 유서를 쓰리라
가을이 오면 내 애인은
내 시에 등장하는 곤충과 나비들에게
이불을 덮어주고
큰곰 별자리에 둘러싸여 내 유서를
소리 내어 읽으리라
-
♣ 파블로 네루다 (Pablo Neruda , 1904~1973)
1971년 노벨문학상을 수상한 칠레 시인.
'오늘 밤 나는 가장 슬픈 시를 쓸 수 있습니다' 등의 연애시부터
민중주의에 입각한 선동시 '해방자들'까지
폭넓은 작품세계를 가진 시인으로 평가된다.
스페인 내전 당시 동료 시인들의 처형과 옥사를 목격하면서
이전의 낭만적 정서에 기반한 시세계에서 벗어나,
노동자와 농민의 투쟁을 독려하는 시를 쓰기 시작했다.
1945년 칠레공산당에 입당했고, 상원의원으로도 활약했다.
서정시뿐만 아니라 참여적이고도 민중 지향적인 시를 썼던
그는 평단과 대중으로부터 호평을 받았다.
주요 시집으로 <스무 편의 사랑의 시와 한 편의 절망의 노래>,
<모든 이들의 노래>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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